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사건 사고 == 여느 전장이 그렇듯이 탈레반과 알카에다 뿐만 아니라 미군과 ISAF군도 민간인에게 가혹행위와 학살을 가했다. 2010년에는 미군이 그룹을 이루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 다닌 [[킬 팀]] 사건이 벌어져 미군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2012년 1월에는 네 명의 미국 해병대원들이 전사한 탈레반 병사 세 명의 시체에 소변을 갈기는 동영상이 폭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일로 중동권을 비롯해 미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매우 커졌는데, 사실 미국인들조차도 "'''명예를 중요시 한다는 미 해병대가''' 적군 시체를 모독하다니!"하고 굉장한 충격에 빠진 반응이었다. 결국 해당 해병대원들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어, 1년 금고 또는 이등병 강등 후 불명예 전역과 같은 처분을 받고 군대에서 쫓겨났다. 2012년 2월, 미군이 "실수로"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쓰레기장에서 소각한 것을 아프가니스탄 측이 발견,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을 더욱 꼬아 놓았다. 초반에는 미군의 반응이 '이슬람 과격 저서들을 불태웠더니만 코란이 있더라... 그래서 뭐 대수냐?' 이랬다가 반발과 시위가 넘치고 미군 2명이 사살당하자 부랴부랴 책임자인 장교를 미국으로 전출시켰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는 미군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빚은 현지 주민과의 마찰을 다시 걱정해야 할 지경. [[버락 오바마]]까지 나서서 사과했으나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전쟁이 대체로 그렇듯이, 외국군이 현지민과 사이가 나빠지면 거의 전쟁은 끝난 셈이다. [[모택동]]이 남긴 유명한 말이 한가지 있는데 "게릴라는 민중이라는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라는 거다. 즉, 민중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서 게릴라도 힘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미 민중의 마음이 미군을 떠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미군으로서는 결정적 실책을 범한 셈이다. 이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는 한 술 더 떠서 코란을 칼로 베고 책에다가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이슬람 국가는 기본적으로 대규모 학살과 분살행위도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내심 동조하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마저도 학을 뗄 정도로 무슬림의 심기를 건드린 행위는 바로 코란에 대한 훼손과 능욕이었다.[* ISIL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중동 걸프 산유국들에 반기를 드는 살라피-지하디스트 파벌이기에 그런 면도 있다. 사우디나 카타르 등의 지원을 받는 와하비 무슬림들도 반감이 심하거나 최소한 대놓고 인정하진 않았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군 병사라면 모르고 코란을 태울 수도 있었겠지만, '''상대방이 항의를 해올 정도의 실례를 저질렀음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둥 무례하게 넘기려한 태도'''는 명백한 미군측의 잘못이다. 시위 초에 지휘부가 눈치채고 군중을 진정시키고 오해를 풀려는 노력을 했다면 무슬림들도 문화적 차이에 의한 해프닝이라며 용서해 주었을 지도 모르지만, 미군 특유의 피점령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결국 잘 수습될 문제를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키워버렸다. 애초에 이런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것이 미군의 현지 안정 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인적 교류가 없어 피점령지에 무지할 수 밖에 없었던 제국주의 시대에 비해 정보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무엇보다 미국 본토에 수백만에 달하는 무슬림이 정착을 하고 있는 시대에 미군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트러블을 일으켰다. 전략적으로 현지 주민의 호감을 얻기 위한 대민 지원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피점령지의 문화적인 토양을 고려하며 트러블을 최대한 피하는 것인데, 게릴라 제압을 위한 대민 지원 수준도 아니라 아예 장기 주둔을 고려하는 군대가 이런 준비를 안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지휘부는 주민들 신경 쓰고 있었는데 병사들이 문제다'라고 책임을 돌릴 수가 없는 게, 현지 주민들이 항상 마주치는 것은 일선 병사들이지, 윗선 참모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병사의 일탈을 막고 행동방침을 교육시키는 것은 지휘부의 몫이다. 그런데 그 지휘부 마저도 상황 파악을 못하다 일이 커지자 부랴부랴 잠재우려 달려들었다. 2012년 3월 11일에는 미군 병사가 아프간 마을을 돌며 비무장 민간인 열여섯 명을 사살한 [[칸다하르 학살 사건]]이 벌어져 반미 감정이 더 거세졌다. 피해자 중에는 두 살짜리 아기까지 있어서, 아기 부모가 '우리 아기가 탈레반이냐?'라며 울부짖으며 분노하는 인터뷰 영상이 전 세계에 퍼졌다. 원래는 성실하고 바른 군인이였다는데, 이 때문에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인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사회와 영구 격리. 미국 측은 피해 보상금을 내놓고 민심 달래기를 하고 있지만 별 효과는 없다. 애초에 이 사건이 터지기 1년 전에 있었던 [[킬 팀]] 사건과도 마찬가지로 너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종신형이 아니라 사형을 시켜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다만 미군은 해외 전장 파병군인들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서인지 PTSD에 따른 감형사유가 작용해서인지는 모르나 군인들이 해외파병 중 현지주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1960년대 이후에는 사형만은 내리지 않고 있으며, 정 내려야 한다고 해도 사법거래 혹은 배심원간의 의견 불일치 등을 통해 사형선고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게 관행이기는 하다.] 그리고 위에 나온 2012년 4월 카불 동시 테러에 미군들은 아프간 시민들의 돌팔매질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미국 극우파들도 민심이 떠난 자리에 아무리 미국이 열심히 해봐야 반미만 거세지는 현실에 고민 중이다. 존 매케인이 철군 반대를 인터뷰했지만 기자에게 "그럼 철군 말고 대체 뭐 뾰족한 방법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을 못했다. 아니 그 방법이라는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 미군은 자기들과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민정책을 끝내주게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대민정책도 그렇지만 애초 미군은 타국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일본도 개입시키고자 했는데, 그 이유가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해본 적이 있기에 한국인과의 친밀도가 있을 것이라는 한국인 입장에선 어이가 나갈 이유였다. 결국 한국의 반대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저 정도로 현지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지 반 세기 넘게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대민정책도 못 하는 건 당연지사. 미군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감은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며,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라는 미국식 사고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군 한 명이 민간인에게 잘못하면 이 일이 오직 그 미군 한 명에 국한된 문제라 생각하고 처리해버리는데, '''문제는 이슬람 문화권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개개인의 차이가 아니라 '미군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다른 판단이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군의 공식 대응이 '한 개인이 저지른 사건' 수준에 머무르고, 이게 문화적 인식의 차이로 피해자 측에서는 점령군의 오만한 행위로 싸잡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를 이슬람 문화권의 고유한 속성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특정 개인들을 보고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국내에서만 해도 몇몇 몰상식한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로 인해 쪽발이나 짱깨라는 멸칭으로 전체를 비하하는 일이 흔하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럴진데, 실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런 편견이 더 작용한다는 것은 뻔히 예상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은 반대로 '자기 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 [[내로남불]]의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대표적인 미군의 대민정책 실패의 사례로 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모두 초기에 '''미군 병사들이 일으킨 문제들을 미군 당국이 '한 병사가 사고친 것으로 '미군의 이름과는 무관한 개인 단위의 사고'로 취급하다 [[반미]] 감정이 엄청나게 거세진 케이스'''다. 단순한 사고로만 치부하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은 우리나라의 '여중생 장갑차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 영국이나 소련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을 했을지언정 비슷한 문제로 반감을 얻어 게릴라전으로 시달리던 문제를 겪었으며 이런 사고에 대하여 미국처럼 한 개인이 저지른 일 수준으로 우습게 보며 대하다가 똑같은 분노와 저항을 얻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 대다수가 자국 문화 위주로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려다가 나중에 된통 당하고 반감을 얻었던 것처럼 강자라서 남을 이해할 거 없다는 사고방식은 매우 흔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유독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미국의 대 아랍권 정책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다른 전쟁들보다도 이런 무지를 더 심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장으로 보이는 20세기 초중반의 미군 군정 사령부들이 이 시기 미군과 비교하면 요순으로 보일 정도. 호주군 특수부대 [[SASR]]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기간 포로와 민간인 등 39명을 살해했다는 호주 국방부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현직 호주 군인 25명이 중범죄에 연루된 증거도 발견됐다. 보고서는 "'블러딩'(blooding, 여우가 총탄에 맞아 죽는 것을 처음 본 초보 사냥꾼의 얼굴에 여우의 피를 바르는 입문 의식)으로 불리는 병사의 첫 사살 의식을 위해 정찰 사령관이 병사에게 죄수를 쏘라고 명령했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고 기술했다. SASR의 전쟁 범죄는 전직 법무관인 데이비드 맥브라이드가 관련 비밀문서를 현지 방송사에 제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맥브라이드 전 법무관은 비밀누설 사실을 인정한 뒤 기소됐지만, 이를 계기로 호주군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69&aid=0000555449|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